생활 속의 모바일 - 모바일 또 다른 커뮤니케이션의 역사

대중문화비평가 정여울

여대생 A씨, “영화를 보든, 편지를 쓰든, 인터넷에 접속하든, 왠지 휴대전화로 하면 더 재미있어요.” 직장인 B씨, “영상이든 영화든 줄 설 필요 없이 간편하게 보고 싶을 때 바로바로 봐야 맛이죠.” 여고생 C씨, “이미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지만 영화 볼 수 있는 기종으로 바꾸고 싶어요.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함께 교실에서 영화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동영상을 찍어주기도 하구요. 캠코더요? 누가 그걸 갖고 다녀요? 무겁게.”
  - 당신의 손 안에 영화가 있다, <필름 2.0>, 2002년 12월 28일자 -


모바일 혁명은 인류 커뮤니케이션의 역사를 ‘모바일 이전’과 ‘모바일 이후’로 나눌 수 있을 만큼 엄청난 문화적 파장 효과를 가져왔다. 휴대전화는 멀리 있는 너와 여기 있는 나를 연결시키는 소통의 미디어를 넘어, 휴대전화의 존재 자체가 의인화되어 유사인격을 가진 반半생물체가 되어가고 있다. 휴대전화를 잃어버리거나 집에 두고 나온 날, 사람들은 지갑을 잃어버리거나 주민등록증을 분실한 것만큼이나 불안해하게 된 것이다.


휴대전화는 우리에게 때로는 친구이며 연인이고, 가족이자 멘토가 된다. 화장실에 가서도 잠이 들어서도 잠시도 휴대전화를 꺼놓기 어렵게 된 현대인들에게 휴대전화는 ‘제2의 나’가 되었다. 휴대전화를 끄는 순간, ‘나’라는 존재 또한 세상에서 깜빡 잊히는 듯한 환상이나 휴대전화의 배터리가 나가는 순간, 내 생의 일부가 단절되는 듯한 상실감을 우리는 경험한다. 반면, 문자메시지를 통해 친구의 따스한 메시지를 전달 받는 순간, 우리는 하늘이 무너질 듯 우울하다가도 금방 미소를 지으며 재빨리 각종 귀여운 이모티콘을 사용하여 행복의 메시지를 보낸다.

모바일 테크놀로지는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전천후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휴대전화는 이동성뿐 아니라 개별성과 비밀성을 증가시켰고, 휴대전화를 통해 자신을 과시하거나 극단적인 프라이버시를 지향하는 문화를 초래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휴대전화의 최대 이변은 문자메시지의 커다란 역할이다.

이제 사람들은 음성메시지보다 문자메시지가 마음을 전달하는 데 더 적합한 미디어라고 느끼곤 한다. 문자메시지는 타인의 일상을 침입하는 휴대전화의 공격성을 최소화하면서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이 지니는 부담감을 해소한다. 뿐만 아니라 얼굴을 보고 말하기 어려운 그 모든 사연을 간결하고 분명하게, 게다가 다양한 이모티콘 이미지로 의미를 보충할 수 있는 전천후 커뮤니케이션의 진원지가 된 것이다.

게다가 문자메시지는 썼다 지웠다를 반복할 수 있고 내 마음에 들 때까지 문장을 다듬고 고칠 수 있다.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에서 오는 돌발성과 우연성을 최소화시키고 감정의 돌연한 폭발을 자제할 수 있는 정서적 완충장치로 기능하기도 한다. 모바일 세대들은 간단한 이모티콘과 문자용 은어들만으로 서로의 감정을 정확하고 예민하게 포착할 수 있게 되었다.

“문자만 보내도 기분이 어떤지 다 알아요. 이모티콘을 붙이는지 안 붙이는지 보면 대충 알거든요. (이모티콘을) 안 붙이면 기분이 안 좋다는 거죠. 그래서 쓸 때마다 꼭 (이모티콘을) 붙이는 편이에요. 이모티콘 많이 사용하고 (문자 저장함에) 오래 보관하고 그러니까 (문자에서도) 기분을 알 수 있죠.”
- <모바일 소녀들의 수다 떨기> 중에서 -


젊은이들에게 문자메시지는 경쾌한 로맨스의 온상이기도 하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전통적인 구애방식을 몰아내고 있다. 문자메시지는 데이트 신청이나 사랑 고백을 했을 때 상대방의 대답을 기다리는 순간의 긴장, 그 ‘결과의 부담’을 대폭 줄여준다. 문자메시지는 오직 너밖에 없고 너를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신파적 로맨스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너에게 관심은 있지만, 네가 나를 선택하지 않아도 나는 상처받지 않는다는 점을 살짝 함축하면서 지금 이 순간 너와 가벼운 데이트를 신청할 수 있을 정도의 용기. 그것이 문자메시지가 우리에게 선물(?)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에너지다.
홍콩 여대생 에바는 문자메시지가 지닌 미묘한 정서적 효과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것은 정말 편리해요. 단어 몇 개만 타이핑하면 당신은 그와 데이트할 수 있지요. 만약 그가 남자라면, 그에게 전화하는 것은 약간 무례하거든요! 그래서 (나는) 남자들과 문자메시지를 사용하는 것을 선호해요. 전화 걸기는 너무, 그것은 너무 적극적이에요. (문자메시지는) 덜 공식적인 것 같아요.”
- 엔젤 린·아빈 통, <홍콩 여대생들의 문자메시지 문화> 중에서 -


입으로는 차마 말할 수 없는 사랑 고백이 문자메시지를 통해서는 보다 적극적이고 저돌적인 로맨틱한 표현으로 바뀌곤 한다. 실제로 잘 웃지 않는 사람도 문자메시지를 통해서는 '하하하', 'ㅋㅋㅋ'라는 커다란 웃음의 제스처를 보이기도 한다. 아무리 무뚝뚝한 남성이라도 문자메시지를 보낼 때는 상냥하고 로맨틱해질 수 있다. 그 사람의 눈을 보지 않고 말할 수 있기에 평소보다 훨씬 낯간지럽고 달콤한 표현들을 쓰게 되는 것이다. 상대방이 업무로 바쁜지 아닌지 알 수 없을 때 문자메시지는 더욱 유용하다. 문자메시지는 타인에게 폐를 덜 끼치며, 더 사려 깊은 행위라는 인상도 준다.

나는 그가 필요하지만 그는 다른 일로 바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가 지금 전화를 받기 어려운 상태라면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는 태도를 함축하는 것이 바로 문자메시지이다. 음성메시지에 비해 송신과 수신의 제한을 훨씬 덜 받는 문자메시지는 이렇듯 저마다의 표현의 욕망을 극대화시키곤 한다.

무엇보다도 문자메시지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게 용기를 준다. 사랑에 빠진 이라면 누구나 그 순간에는 ‘5행시인’이 된다. 5줄 안에 내 안의 모든 감정을 함축하여 담을 수 있는 은유와 상징의 기술이야말로 문자메시지를 통한 사랑 고백의 핵심이다. 문자메시지는 미묘한 커뮤니케이션의 다양한 가능성을 확대시킨다. 반드시 필요한 정보를 담고 있지 않아도, 문자메시지는 ‘내용 없는 넋두리’를 얼마든지 전할 수 있는 편안한 매개체다.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단지 누군가 말을 주고받고 싶을 때 문자메시지는 유용한 출구가 된다. 우리는 무엇을 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즐기기 위해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경우가 많아졌다. 메시지의 내용보다도 ‘메시지 없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느낌에 몰입하게 되는 것. 메시지보다는 미디어에, 미디어보다는 소통의 몸짓 자체에 몰두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연인은 아니지만 반쯤은 연애감정을 갖고 있거나 사랑과 우정 사이를 넘나드는 미묘한 감정도, 실제 대화보다는 문자로 소통하는 것이 더 편안해졌다. 우정과 사랑 사이의 미묘한 긴장관계를 이렇게 문자메시지를 통해 은밀하게 즐기는 에바의 모습은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이 가져온 또 하나의 문화적 변화다. 그녀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여러 명의 ‘문자메시지용’ 남자친구들과 모호한 감정을 공유함으로써 미묘한 쾌락을 즐긴다.

“이 방법은 능동적이지만 수동적이기도 해요. 당신은 (당신의 미래를 받은 뒤) 그/그녀의 반응을 무시할 수 있지요……. 그/그녀가 당신에게 응답하는지 아닌지 마음 쓸 필요가 없어요. 하지만 그/그녀에게 당신이 생각하는 바를 알릴 수 있거든요.”
- 엔젤 린·아빈 통, <홍콩 여대생들의 문자메시지 문화> 중에서 -

능동적이지는 않지만 수동적이지도 않은 이 교묘한 이중성은 문자메시지가 지닌 양날의 칼이기도 하다. 문자메시지는 오프라인에서 하기 어려운 말들을 훨씬 편하게 전달해주는 매개체이기도 하지만, 오프라인상의 생생한 소통빈도를 점점 떨어뜨리는 또 하나의 장벽이다.

문자메시지의 약점이라면, 편안하고 가벼운 대신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문자메시지를 통한 고백은 가볍고 무책임해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진지하거나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문자메시지가 표현력을 확장시킬 수는 있지만, 그것이 ‘진심’임을 증명하기는 어렵다. 그 사람의 눈빛, 표정, 음성의 미세한 변화, 분위기라는 다채로운 비언어적 정보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감정을 위장하거나 과장하기 쉽다. 결정적으로 문자메시지는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의 번호인 양 가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어 ‘`장난메시지`’가 될 가능성이 있다.

여고생들은 사랑에 빠진 친구를 곯려주기 위해 상대편 남자로 가장하고 ‘나도 널 사랑해.’라는 식의 장난메시지를 보내서 친구의 가슴을 설레게 해놓고 키득대기도 한다. 송신자의 전화번호를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인해 문자메시지가 악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제 많은 젊은이들은 음성통화보다 문자메시지를 훨씬 선호하고 또 자주 사용한다는 것이다. 통신료 부담이 크게 줄어 구구절절 사연을 설명할 필요도 없고, 발화 순간의 갖가지 비언어적 요소(표정, 목소리, 분위기, 몸짓 등등)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도 없어진 문자메시지는, 이제 빼놓을 수 없는 일상적 커뮤니케이션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모바일 오디세이》의  ‘Letter' 중에서


대중문화비평가 정여울 님은..
서울대독문과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4년 봄 <문학동네>에 ‘암흑의 핵심을 포복하는시시포스의 암소-방현석론’을 발표하며 평론가로 데뷔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모바일 오디세이》, 《아가씨, 대중문화의 숲에서 희망을 보다》, 《국민국가의 정치적 상상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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