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큰진지남(SK텔레콤 블로그 에디터)
‘이동통신 역사’시리즈에서 CDMA상용화 이야기를 지난 주에 소개시켜드린 바 있습니다.(해당 글 보기) 하지만 포스팅 하나에 담기에는 그 과정에 너무 재미있는 에피소들이 많아 CDMA 개발 뒷 이야기를 3부작으로 소개시켜드리려고 합니다.^^
CDMA 세계최초 상용화는 SK텔레콤의 자랑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랑이기도 합니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IT 후진국이었던 대한민국이 IT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게 해준 주요 사건 중 하나였기 때문이죠. 어려운 환경에서 이뤄낸 성과인 만큼 비하인드 스토리도 많은 법. CDMA 기술 개발 뒤에는 어떤 사건들이 있었을까요?
한국이동통신 중앙연구소 신축공사 기공식
CDMA를 개발할 운명이었던 세 사람
CDMA 기술을 개발하는 인력이 모인 것부터가 기적 같았습니다. 사실 한국이동통신에는 이미 CDMA 운용기술전담반(93년 7월에 한국이동통신 중앙연구소 내에 만들어졌으며 연구용 CDMA시스템을 조기에 구축하여 운용 기술을 확보하고 전문인력을 양성하여 1995년 말로 예정된 CDMA시스템 도입 때 자체 기술진으로 즉시 운용 및 서비스를 하는 것을 목표로 했던 팀입니다)이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조직은 일할 사람도 없고, 돈도 없고, 시간도 없는 이른바 "3無"만이 처참히 널브러져 있던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만약 이 조직이 그대로 운영되었다면 CDMA상용화가 어찌되었을 지 모르던 상황이었죠.
이 때 1993년 9월 16일 한국이동통신 부설 이동통신 기술 개발 사업 관리단(CDMA방식 및 PCS의 기술 개발을 보다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회사 부설기관으로 만들어진 기관)이 해성 같이 출범합니다. 이 당시 단장을 맡은 서정욱 단장은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를 되새길 정도로 CDMA시스템 사용화는 멀게만 느껴졌었지요. 이런 상황에서 관리단에 구원투수로 나타난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는 바로 89년 한국통신에서 TDX-10 개발을 주도한 핵심멤버였던 이성재 부장과 92년 겨울 퀄컴 출장시 인도인 박사를 만나 토론하는 과정에서 CDMA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을 계기로 기술 개발 사업관리단의 멤버가 된 이주식 부장. 특히 이주식 부장이 관리단의 일원이 된 상황은 재미있습니다.
이주식 부장
“갑자기 서울로 올라 오라는 연락이 왔어요, 본사 사무실에 들어가니 호랑이 같이 생긴분이 앉아 계시더군요, 간단히 누구라고만 밝히시더니 이것저것 꼬치꼬치 묻기 시작하셨어요, 영문도 모른채요”
“갑자기 서울로 올라 오라는 연락이 왔어요, 본사 사무실에 들어가니 호랑이 같이 생긴분이 앉아 계시더군요, 간단히 누구라고만 밝히시더니 이것저것 꼬치꼬치 묻기 시작하셨어요, 영문도 모른채요”
이것이 이주식 부장과 서정욱 단장의 첫만남이었다고 합니다. 이주식 부장은 이 미팅 일주일 후 영문도 모르고 서울로 발령받고 CDMA 개발에 전격 투입되게 됩니다.^^
이동통신 기술개발사업 관리단 현판식
관리단에 크리스마스 케이크가 하나 가득?
이렇게 꾸려진 관리단은 연일 야근을 계속하게 됩니다. 목표는 있는데 주어진 시간은 데드라인은 촉박했기 때문이죠. 그러던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날. 관리단원들이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이하여 모처럼 케이크를 들고 퇴근 준비를 할 무렵, 갑자기 철야 작업 지시가 떨어졌다고 합니다.
“ CDMA 전쟁은 95년말까지 끝내야 한다. 12월 31일과 1월 1일은 불과 하루 차이지만 해가 바뀌니 1년이 될 수도 있다. 지금 우리가 사용자 요구사항을 개발업체에 전달하면 우리사업은 정신적으로 1년 앞당길 수 있다. CDMA전쟁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라는 것이 서단장이 기억하는 당시의 분위기입니다. 분위기가 이렇게 돌아가자 집에 가서 식구들과 크리스마스를 즐기려던 관리단원들은 케이크 상자를 제자리에 놓고 밤을 새워 팩스를 돌려 사용자 요구사항을 개발업체들에 전달했다고 합니다.
그날밤 한 업체에서는 “싼타클로스가 사용자 요구사항을 선물로 보내줬으니 CDMA사업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라고 전화를 해 왔다고도 하네요. 그날 밤, 관리단 사무실에는 단원들이 집에 가져가지 못한 케이크 상자가 잔뜩 쌓여 있었다고 합니다.
이동통신 연구의 메카였던 중앙연구소
불도저 같은 추진력이 필요했던 시절
이렇듯 서정욱 단장의 취임, 이주식 부장의 관리단 참여에서부터 업무하는 과정 하나, 하나가 상상 이상의 엄청난 추진력을 갖고 진행이 되었습니다. 이동통신에 대한 변변한 기반도 없었던 상황에서 2년 안에 선진국들조차 상용화하지 못했던 기술을 완성시키려면 이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개인의 이익이 아닌 ‘대한민국 기술 자립’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개인의 안위를 포기하고 불도저 같이 추진한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IT강국 코리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SKT
이렇듯 잠까지 포기하며 일한 이들을 보고 주변 사람들이 한 말이 궁금하신가요? CDMA기술이 고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도와준 숨은 공신들도 알고 싶으시다고요? 이어지는 CDMA 개발 뒷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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